총회재판국은 판례를 중시해야 한다

교단은 속히 판례중심적인 재판을 하여 재판의 일관성을 추구해야

편집부 | 입력 : 2018/11/26 [06:40]

로마법에서 재판관은 법의 창설자이외에 법학자, 해석자, 법률의 고안자라고 불리웠다. 재판관의 호칭이 다양한 이유는 이전에 공표된 법률로는 규정될 수 없는 사건이 많으므로 사회생활의 새로운 요구와 사실들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가했기 때문이다. 관습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성문법이상의 효력이 있듯이 재판관으로부터 새롭게 나온 판례도 일치된 견해에서 파생한 법해석이기 때문에 새로운 法源으로서 모범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법률의 최상의 해석자인 관습과 판례가 서구의 법전통을 형성하였다.

 

재판관이나 판사는 정의를 내리는 사람

 

로마법과 교회법아래서 재판관의 직무는 회부된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재관관, 판사를 의미하는 라틴어 유덱스(iedex)어원은 유스 디체레(ius decere)로서 '정의를 말하다', '정의를 내리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재판관이나 판사는 정의를 내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책무를 갖고 있는 재판관은 자연법과 신법을 곡해할 수 없고, 바르게 적용해야 했다. 재판관의 지위는 입법자의 지위에 전혀 예속되지 않고 법의 산물인 판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판례란 해석된 법과 다르지 않으므로 법과 같은 지평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개별사건을 알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하면서 "몇몇 개별사건이 법으로 위임될 필요가 없다면 재판관들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아퀴나스는 "재판국의 판결은 몇몇 특별한 사실에 관해서 개별법과도 같다"고 했을 정도로 재판관들의 결의에 의한 판결은 상당히 중요함을 지적했다. 판례는 과거의 가치이지만 미래의 사건을 판결하는데 기준점을 갖는다. 모든 개별사건들이 법률로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구법전통의 가치는 법률과 판례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성문법에 기초했고, 영국과 미국은 해석된 판례법에 기초했다. 우리나라는 대륙의 영향을 받아 성문법에 토대를 두면서 최근에는 영미법의 영향을 받아 판례를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대부분의 지방법원은 대법원 판례에 기초하여 판결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법원도 판례재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판례를 중시하지 않는 예장통합 재판국 

   

그러나 예장통합재판국의 판결을 보면 이전까지 100년 전통의 재판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전혀 형성되지를 않았다. 재판 판례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화도 전혀되지 않았다. 그리고 재판국원이 매년 바뀔 때마다 사람과 교회에 따라 판결의 내용이 춤을 추고 있는 실정이다. 1심과 2심, 3심, 재판이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지연과 학연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 테면 지난 102회 재판국을 보면 전반기의 판결과 후반기의 판결내용이 다르다. 총회재판국에서 판결이 되어도 이유없이 재심에서 정치적 판단으로 뒤집힌다. 무죄가 유죄가 되고 유죄가 무죄가 된다. 법리심이 아니라 사실심을 다시 하기 때문이다.

 

오인근, 전중식, 안종범, 박노철, 김수원 목사, 동남노회의 사건은 대표적이다. 누가 재판국장이 되느냐에 따라서 판결의 내용이 뒤바뀐다. 명성교회 사건 역시 원피고부적격으로 재심도 되지 않는 사건을 갖고 억지로 재판을 하려고 하고 있다. 모두 이전 판례를 참조하지 않기 때문에 기준없이 그 때그 때 마다 상황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재판을 한다.  적어도 정확한 재판을 하려면 이전의 판례를 참조해야 한다. 판결문에 이전의 판례를 인용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고무줄 재판

 

재판국장이 누가 되는냐에 따라 판결내용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판결의 기준이 교단헌법, 헌법시행규정, 교단재판사례(총회결의), 헌법해석위 사례(총회 결의)에 기초하여 판결해야 하는데 재판국원들의 개인성향에 따라 또는 학연과 지연의 성향에 따라 임의적 주관적으로 판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102회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보면 이전의 판례를 전혀 따르지 않고 사회법정의 시각으로 판결하여 물의를 빚었고, 이러한 판결을 다시 뒤집어 판결하는 사례를 빚었다.


동남노회의 김수원목사의 사건은 이미 교단재판국에서 선거무효소송의 판결에서 서남노회 사건과 판결한 사례가 있는데 이를 전혀 적용하지 않았고, 이리 남중교회 박춘수목사 사건도 이력서의 허위와 관련하여 여러교회 목사를 위임목사청빙무효로 한 사례가 있는데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 여수성광교회의 정기철목사건 역시 당사자부적격을 이유로 각하하여 정기철목사의 손을 들어준 것은 사람마다 달리 판결하는 고무줄 판결이다.

 

법에 문외한인 목사국원들은 변호사출신인 장로국원들에게 질질 끌려가

 

불행하게도 이러한 재판이 변호사출신 국원들에 의해 더욱 춤을 추는 것이다. 자신들의 법지식으로 인해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목사들이 재판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법에 문외한인 목사국원들은 변호사출신인 장로국원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 변호사출신 장로국원들은 젼혀 교단법의 전통과 전승, 판례, 헌법위 해석사례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사회법정에서 다루었던 법시각을 갖고 교단법을 무시하여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한 시각을 갖고 접근하다보면 예장통합교단의 100년 교회법의 전통, 재판의 전승이 파괴되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된다. 교회법전통의 법기준과 원칙이 사라지면 그동안 수십년 동안 총회에 보고된 내용들이 무용지물로 되는 것이다.

 

원칙과 기준없는 임의적, 자의적, 다수결적 판단


지금 현재의 재판국은 법문외한인 사람들이 국원에 임명되다 보니 임의적, 자의적, 다수결적 판단을 하게 되어 다수결의 힘이 법원보다 더 큰 효력을 갖게 되었다. 다수결앞에 모든 기준과 원칙이 사라지는 것이다. 작금의 총회는 교단의 법원칙을 뒤엎고 결의로서 모든 것을 밀어부친다. 이는 공산당의 인민재판과 빌라도의 결의 재판과 다를 바가 없다. 다수결앞에 예수는 사라지고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즉 적법한 절차와 실체는 사라지고 다수결의 결정만 진리로 둔갑하게 된다.

 

103회 총회결의는 인민재판

 

103회 총회결의는 인민재판을 방불케 했다. 법과 원칙이 없고 다수결의 결의로 이미 판결한 재판국의 판결조차 폐지시키고 헌법위 규칙부의 해석까지 폐지했다. 그리고 다시 취소한 재판국의 판결을 다시 철회하였다. 어떤 법리부서의 결정은 폐지하고 어떤 법리부서의 결정은 취소했다고 다시 철회했다.  
 

이러한 누를 더는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새로이 임명된 재판국원들에게 헌법해석 사례와 이전의 재판사례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판례는 또다른 법해석이다. 총회재판국의 판례는 모두 총회에 보고되어 총회의 결의로 채택된 총회결의물들 이다. 즉 이전재판국의 판례는 총회의 결의와 동등하여 법원은 헌법, 헌법시행규정, 총회결의의 순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판례와 헌법위 해석, 규칙부 해석은 충분히 총회결의로서의 효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총회 재판국은 총회재판국 판례와 헌법위 해석을 충분히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총회결의로서 법원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이즈, 지연, 학연에 따라 춤을 추는 결의 재판

 

역사없는 민족은 의미가 없듯이 판례없는 재판은 의미가 없다. 법은 일관성을 지향해야 하는데 통합교단의 재판국은 일관성이 사라지고 매년 판결이 춤을 춘다. 교회의 사이즈, 지연, 학연에 따라 춤을 추는 결의 재판이 되어 버렸다. 과거의 법기준과 법전승 없이 현재의 결의만 갖고 판단하기 때문에 법원칙재판이 아니라 상황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교단은 속히 판례중심적인 재판을 하여 재판의 일관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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