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임권을 법원에 빼앗겨 버린 사랑의 교회

서임권을 다시 빼앗을 길은 있는가?

교회재판상담소 | 입력 : 2019/07/01 [15:18]

최근 법원이 사랑의 교회, 서울교회 목사에 대해 서임권을 행사하였다. 현시무하는 교회의 소속목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교회는 심지어 임시당회장대신 법원의 직무대행자 변호사를 파송했다. 얼마전 한기총, 감리교회에도 변호사 직무대항을 파송한 바 있다. 법원이 서임권을 갖고 있다.  

 

권위가 사라진 한국교회

 

사랑의 교회는 서임권을 법원에 빼앗겨 버렸다.  이는 그만큼 교회의 권위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서임권논쟁이외에도 최근 사랑의 교회 판결은 모두 법원에서 결정한다. 오정현목사의 위임목사건, 장로의 임직건, 도로점용건 모두 법원이 판단하고 있다.  

 

서임권 투쟁

 

서임권 투쟁 (敍任權鬪爭)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에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기독교 평신도의 성직임명권인 서임권을 놓고 벌인 권력다툼을 말한다. 서임(敍任)은 임직을 베푸는 것이고, 서임권 투쟁[Investiture Controversy]은 임직의 투쟁을 말한다. 

 

성직자를 임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교회의 책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세속의 권력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강북제일교회 사건만 하더라도 교단은 황형택목사에게 베푼 위임목사지위를 파기하였지만 법원은 위임목사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여 황형택목사는 교회건물만 차지하는 있는 성직자로서 전도사라는 서임까지 출교면직된 파계승(破戒僧)인 상태이다.  

 

사실 서임권은 오토 대제 이전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왕이 보유하고 있었고, 오토 1세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1세는 비(非) 카롤링거 왕족 출신이자 비(非) 프랑크족 출신으로 국왕으로 선출되었다는 취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행사할 수 있는 서임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아들 황제 오토 1세는 성직자들에게 봉토를 주고 봉건영주들과 맞서게 하였다. 명분은 기독교를 세속 권력자 영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안장을 찬 주교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주교들은 자신들의 사익을 얻기 위하여 황제의 주교임명권(서임권)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없었던 당시 교회개혁가 그레고리오 7세는 황제에게 부여되었던 주교임명권을 가져오기로 하였다. 당시 그레고리우스 7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가 작센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내전을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알고, 서임권은 황제가 아닌 교황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오 7세는 성직자 임명권을 교황이 행세한다는 것을 황제 아인리히 4세에게 말하였으나 거부당하자, 그레고리오 7세는 아인리히 4세를 파문시킨다. 이것이 카놋사의 굴욕이다.

 

교회의 개혁은 서임권을 찾아오는 것부터

 

1073년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 7세는 클뤼니 수도원 출신으로 원칙주의와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다. 교회의 개혁은 서임권부터 찾아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교황은 투쟁을 통해 권위를 크게 높였다. 그레고리우스 7세의 정치적 요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종교적 문제에 관한 한 기독교 세계의 최고 지배자로서의 교황의 지위는 강력하게 재천명되어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한국의 종교개혁 역시 법원으로부터 성직임명권을 찾아오는 데 있다.

 

한국교회의 종교개혁 기념

 

이와같이 서임권 투쟁의 발단은 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교회 개혁운동이었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법원으로부터 서임권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CBS는 루터를 새긴 황금동전을 200만원씩 팔아 현대판 면죄부를 팔았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운동 기념으로 유럽의 종교개혁지를 방문하는 것 으로 종교개혁을 기념하였다.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신학대학 교수들도 이미 죽은 칼빈, 루터의 교리운동을 반영하는데 불과했다. 실제로 교리개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레고리로 교황처럼 법원으로 간 서임권을 되찾아야 한다.

 

서임권을 법원에 빼앗긴 교회들

 

사랑의 교회건은 오정현목사의 귀책사유도 있지만 개신교와 사랑의 교회자체의 권위가 실추되다 보니 서임권을 법원에 빼앗겨 버린 것이다. 법원이 자신들 마음대로 서임권한을 갖는 것이다. 최근에 서울교회도 법원이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여 서임권을 행사하였다. 교회측은 소속노회에 임시당회장을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을 하였는데 법원이 변호사 직무대행자를 파송하였다. 해당노회(강남노회)가 스스로 법원에 서임권을 반납한 것이다.

 

한기총이나 감리교회 재판시에도 법원이 직무대행자를 파송하여 서임권을 행사하였다. 이는 해당관련자들이 소송을 통하여 법원에 서임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교회에서 법원에 서임권을 요청하는 한, 교회는 권위를 세울 수 없게 된다.  서임권을 법원에 빼앗긴 사랑의 교회사건이야 말로 교회의 권위와 기독교의 권위가 추락된 것을 보여준다. 단지 오정현목사의 권위 추락이 아니라 교회와 기독교의 권위추락이다. 법원으로부터 서임권을 가져오려면 교회와 기독교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최근 언론은 대형교회사건을 연일 보도함으로 기독교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법원이 서임권행사를 하고 있다.  

 

사랑의 교회 개혁은 서임권행사부터

 

사랑의 교회는 장로를 임명할 권리, 합동교단은 목사를 위임목사로 임명할 권리, 즉 서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사랑의 교회가 다시 살기위해서는 서임권부터 찾아와야 한다. 예장통합교단은 명성교회 서임권을 교단이 휘두르려고 하고 있다. 장로의 성직 임명은 교회에 있고, 목사의 성직 임명은 교단에 있다. 그러나 현행 교단의 서임권을 법원이 가져바 버렸다. 법원이 서임권을 행사할 기회를 준 것이다. 

 

중세에서도 황제나 교황들에게 서임권의 주도권을 빼앗길 때는 권위상실에 있다. 교황의 권위가 상실되면 서임권은 황제가 갖고, 황제의 권위가 상실되면 서임권은 교회가 갖게되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의 권위가 상실되고 교단의 권위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법원이 서임권을 갖게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개혁은 법원으로 서임권을 가져와야 하는 것이고, 법원이 서임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법원에 가는 것을 자제야 하고, 교단 역시 개교회의 서임권을 가져오려고 해서는 안된다. 장로교단은 목사의 위임목사임명권은 개교회에 있지 교단에 있지 않다. 현재 에장통합교단의 문제는 개교회의 서임권을 교단이 주도권을 행사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가 서임권을 찾아오려면

 

사랑의 교회가 서임권을 법원으로부터 가져오려면 교회가 바로서야 하고, 오정현목사의 귀책사유를 최대한 축소시켜아 하고, 교단의 변칙 위임목사제도에 부합하지 말아야 하고, 꼼수보다는 정면돌파를 해야 하고,  장로교회의 서임권은 교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오정현목사는 사랑의 교회 위임목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공동의회를 자격없는 자가 인도하였으므로 장로임직을 위한 공동의회 결의가 무효라는 것이다. 실제로 장로임직과 관련해서는 법원이 아니라 교단이 심판을 해야 했다. 교회의 권위를 교단에 내주고 말았다.        

 

장로의 임직은 대다수 신도들의 동의하에 종교단체가 자율적인 헌법을 갖고 선출했고 지금까지 장로로서 당회에 참여하고 시무도 해왔는데 이제와서 무효라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도 사제를 선출하는 절차가 잘못되었거나 권한없는 추기경이나 고위성직자가 임명했다면 사제나 수녀의 임명은 잘못된 것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중세의 서임권논쟁이 한국법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법원이 종단의 장로임직과 개교회의 목사서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독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사랑의 교회 공동의회결의 무효확인(2018나2008109)을 선고했다. "피고가 2017. 3. 19. 한 공동의회결의 중, 장로임직자 선출 안건에 관하여 한 결의는 무효로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오정현목사가 적법한 당회장, 적법한 공동의회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자격없는 자가 소집한 공동의회결의에서 7명의 장로임직자를 선출한 것은 무효라는 것이다. 

 

법원이 장로의 임명권을 무효시켜 중세의 서임권논쟁을 방불케 한다.

 

법원은 법원대로 대형교회 분쟁이 양측간에, 또 교단에서 이를 자정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 적극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교단보다 법원을 신뢰하고 있고 법원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기독교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합동이라는 대형교단이 오정현목사 하나 보호할 능력이 없고, 단지 편법으로만 그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어 법원이 철퇴를 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예 이 참에 법원은 헌당식예배도 철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목사의 발목을 잡는 법원

 

오정현목사 개인의 문제가 사랑의 교회 단체의 결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 법원은 오정현목사의 위임목사의 자격유무를 판단하면서 교단헌법상 사랑의 교회 위임목사로서 자격이 없는 자가 소집한 공동의회는 무효이기 때문에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회의도 무효라는 주장이다. 개인의 자격유무가 단체의 결의까지 형해화시켜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앞으로도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오정헌목사측이 승소하기는 거의 불가능 하다. 

 

오정현목사는 합동교단 법에서 요구하는 위임목사신분의 하자로 인해서 더는 합동교단의 헌법의 틀과 일반 법정의 틀안에서는 승소할 수 없게 되었다. 현행 교단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법원은 계속 오정현목사의 반대편에서 서서 오목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의미없는 위임목사 재청빙

 

지난번 위임목사재청빙이 오히려 우수운 꼴이 되고 말았다. 오정현목사는 합동교단의 틀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의 교회가 오정현목사를 계속 붙잡으려면 교단을 탈퇴해야 하고, 교단에 계속 남아있으려면 오정현목사를 놓아야 한다. 서임권이 법원에 있는 한, 오정현목사가 설 자리는 없다.

 

교단은 오정현목사의 편에 서서 오정현목사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사회법정은 오정현목사의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에 오정현목사를 사랑의 교회목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서임권의 주도권을 이미 법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단이라는 단체는 오정현목사라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에 대해 사회법정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교단이 오정현목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 교인들의 선택만 남아있다. 교인들이 90%이상 교단보다 오정현목사를 지지하고, 오정현목사와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면  교단법이 아니라 교인법으로 사회법과 대항해서 싸워야 할 것이다. 교인의 결의가 법원의 결의에 대해서 항전해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게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법은 교단의 헌법보다 총유권자인 교인의 결의를 존중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판단한다면 새로운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제2의 광성교회 사태가 발생할지 두고 볼 일이다. 실패하면 제2의 광성교회사태가 되는 것이고, 지혜롭게 대처하면 사랑의 교회가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생길 것이다.   

 

소수 판사의 결정에 패소한 수만명의 사랑의 교회

 

사랑의 교회는 교인의 수가 다수이지만 사회법정에 패소하다 보니 교인의 다수결의가 사회법정 판사소수의 결의를 압도하지 못했다. 양이 질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광성교회 이성곤목사측도  교인다수의 결의를 존중한 나머지 법원이 요구하는 준법투쟁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인다수는 간접강제의 폭탄을 맞고 교회당을 양도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이성곤목사측이 법원의 결정보다 교인의 숫자를 너무 과신했기 때문에 싸움에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앞으로 사랑의 교회는 양의 싸움이 아니라 질적인 싸움에 승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이라는 것이 고기 그물망과 같아서 아무리 촘촘하게 그물망으로 되어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듯이 사랑의 교회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교회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하는 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사실의 문제이기때문에 신앙의 부활적 가치로 십자가라는 사실의 문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이다.  

                   

▲     © 교회재판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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