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낙마는 맑스주의의 낙마

1989년, 1993년 두 논문을 통해서 본 조국의 사상

교회재판상담소 | 입력 : 2019/10/16 [06:45]

10.14 조국이 기자회견을 하고 갑자기 낙마하게 되었다. 3시간전까지 검찰개혁을 말하고 바로 사의 표명을 하였다. 조국의 낙마는 그의 사상의 낙마였다고도 볼 수 있다. 조국의 사상은 그의 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89년)과 울산대학 교수시절 민주법학에 게재했던 소논문(1993, 민주법학 제6호) 을 보면 조국이 실험하고자 했던 것을 잘 알 수 있다.

 

먼저 그의 석사학위논문을 분석해 보자. 조국은 1989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 형법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사회주의 법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병폐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법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는 브루조와 계급들이 도구로서 장악하고 있는 국가는 사멸해야 하고, 브루조아들이 노동자들을 통치하기 위해 도구로서 있는 법도 사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은 그의 소논문에서 민중민주주의의 결의가 성문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시대의 법적 모순은 사회주의 법을 통하여 극복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분명히 직시하고 인정해야 하며, 맑스주의 이름 하에 행해진 기왕의 이론과 실천을 면밀히 검토 비판해야 한다. 이때 유의할 것은 이 작업이 단지 맑스주의의 청산과 해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민중적 입장에 선 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새로운 자본주의 극복전망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민주법학 제6호, 1993))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이미 1989년 서울대 석사학위논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논문 제목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 형법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관헌 연구"이다. 지도교수는 전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수성 교수 이다.

 

▲     © 교회재판상담소

 

논문의 목차는 전시공산주의 단계, 신경제정책 단계, 대전환의 개시, 사회주의 승리와 대숙청, 맺은 말이다.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서론을 보면 조국이 어떤 논문을 쓰고자 하는 의도를 볼 수 있다.  조국은 먼저 형법에서 죄형법정주의, 재판청구의 보장, 일사부재리의 원칙, 소급입법금지의 원칙 등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면 어떤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는가에 먼저 질문을 던진다.

 

사회주의 법을 통하여 법실현

 

두번째는 이 원칙들은 부르조아 자유주의의 형법이론이라고 판단하면서, 세번째 이러한 문제를 대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학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법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꿈은 현재 모순되는 형법의 대체를 사회주의 법학을 통하여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형식은 검찰개혁이지만 이면은 사회주의 법학을 도구로 하여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공수처법도 중국의 사회주의 법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조국의 이면은 맑스주의를 통한 자본주의 시대의 형법의 개혁을 추구하려고 실험정치를 했던 것이다.  조국의 낙마는 맑스주의를 토대로 한 실험정치의 낙마라고 할 수 있다. 조국은 주사파계열인 NL(National Liberty, 민족 해방주의) 보다 맑시즘을 토대로 하는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주의)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청와대는 현재 NL과 PD의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기독교정신이 없는 청와대

 

기독교 정신은 전혀 없다. 서구 기독교의 정신이 청와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서구에서는 폐기된 한물간 유물론적인 이념이 지배하고 있어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현정권에서는 핍박을 당하거나 무너져야 할 대상이다. 맑시즘의 영원한 적은 기독교이다.    

 

조국은 논문 서문에서 우리나라 형법교과서들은 계몽주의의 형법사상과 부르조아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문제점을 제기한다. 계몽주의의 형법사상은 프랑스혁명을 통하여 무너지게 되고, 즉 지배계급을 통해 계몽주의적인 형법사상은 몰락한다. 포이에르바하에 의해 대표되는 구파는 계몽주의 시대의 법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하게 된다. 이후 신파는 산업자본주의와 독점 자본주의에서 발생되는 실업, 급여, 범죄의 증대에 걸맞는 법사상을 전개한다.   

 

법을 전개하면서 구파의 계몽주의적인 법사상을 폐기해 버리지만 조국은 신파라할지라도 계몽주의자들이 형법적 제의가 갖는 합리적 핵심을 올바른 체계속에서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조국은 신파, 구파 상관없이 사회구조의 총체적 변화를 위하여 새로운 법학 방법론이 대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눈을 우리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구조를 갖는 사회주의 사회의 법. 형법 현실로 향하게 되었다"

 

그의 논문 서문을 보자.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조국 논문의 맺음말

 

그 논문의 결론을 보면 조국은 소비에트사회의 법형성과정의 전철을 보면서 우리나라 현실의 자본주의적인 법은 소비에트가 걸어간 형법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새로운 사회주의 법으로 대치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법을 전개하면서 구파의 계몽주의적인 법사상을 폐기해 버리지만 조국은 신파라할지라도 계몽주의자들이 형법적 제의가 갖는 합리적 핵심을 올바른 체계속에서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조국은 신파, 구파 상관없이 사회구조의 총체적 변화를 위하여 새로운 법학 방법론이 대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은 현실의 모순을 사회주의 국가의 법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한편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눈을 우리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구조를 갖는 사회주의 사회의 법. 형법 현실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의 연구에서 밝혔듯이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는 짜르체제의 법, 사법기관을 철저히 폐지하고 그것과의 단절위에서 새로운 법체제과 사법기관을 창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프롤레타리아의 진로를 막았던 것은 법에 대한 경제주의적, 허무주의적 태도 및 맑스주의 법이론의 관념화였고, 이러한 편향과의 투쟁은 혁명초기의 프롤레타리아의 중요한 임무였다. 혁명후 격동속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숙청을 통하여 그 이전까지의 노력은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스탈린 비판 이후 다시 개화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원래의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우리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진정 법과 합법성이 승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쇠퇴하고 있는가? 상술한 형법적 제원칙은 진정 계속 발전되고 있는가. 아니면 많은 특별형법과 실무에서 퇴락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재로서 우리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     © 교회재판상담소



조국은 1993년 논문에서 맑스주의 법이론이 한국 사회의 대안이라고 말을 하여 보다 구체화시킨다. 

이상의 작업에 기초하고 또 이에 병행하여 맑스주의 법이론은 한국 사회의 법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작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맑스주의 법일반이론에 대한 탐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체적 법현실에 대한 천착이다. 구체로의 상승이 이루어질 때만 추상도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레닌의 말대로 "구체적인 것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야말로 맑스주의의 혼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 작업은 단지 법학자들 사이의 폐쇄적인 이론적 담화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한국 사회의 법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현실을 타개하는 올바른 계획과 방법을 잡아 나아가기 위해서는 맑스주의 법이론은 그 본성상 현실의 진보운동과의 교통이 필수적이며, 또한 진보운동과 결합하여 그 한 부분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법학(1993) "현단계 맑스주의 법이론의 반성과 전진을 위한 시론")

 

결론

 

이처럼 조국은 자신이 쓴 1989, 1993년 두개의 논문을 보면 자신의 의지를 정치를 통하여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검찰의 개혁은 사회주의 맑시즘에 나타난 형법정신을 통한 개혁이었다. 공산주의는 국가와 법의 사멸을 주장했다. 조국은 기존의 법제도보다는 민중민주주의를 통한 결의를 실천화하려고 실험정치를 하였다.

 

그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36일은 너무 짧았고, 불행하게도 맑시즘을 통한 사회주의 개혁보다 자본주의적 법이 먼저 조국의 사회주의적인 이중적 삶에 잣대를 들이 돼 그의 맑시즘을 통한 검찰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조국의 낙마는 그의 맑시즘을 토대로 한 사회개혁의 낙마이기도 했다.  전광훈목사의 광화문 서학혁명은 결국 주사파와 맑시즘의 타파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서학인 기독교를 토대로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청와대를 하나님의 정신이 지배해야 한다고 판단, 주사파와 맑시스트들의 활동을 보장해 주는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줄기차게 외쳤던 것이다.   

 

 

 



  

http://kidogkongbo.com/1946

 

▲     © 교회재판상담소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